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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컨퍼런스

 
2015베를린피스페스티벌 통일발걸음 셋째날 도움글1
 작성자 : 평화한국
Date : 2015-10-06 17:34  |  Hit : 501  

3, 926() 비텐베르크- 베를린 - 포츠담

 

-탐방에서는 시간 관계상 할레를 탐방하지 않았지만 참고로 아래 자료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할레

할레 (Halle)는 동독 특유의 우중충한 느낌을 주지만 교육, 문화, 행정의 중심이다. 루터 가도의 허브와 같고, 루터가 마리엔 교회에서 여러 차례 설교했으며, 교회사적으로는 실천, 경건, 삶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요람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되었다면 경건주의 운동은 할레 (Halle)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할레는 우리의 신앙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흔적들이 많이 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 최초로 한국 땅에 발을 들인 귀츨라프 선교사, 경건주의 지도자들인 슈패너와 프랑케 등이다.

 

*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재단

독일의 대표적인 경건주의 목회자인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Herman Francke, 1663-1727)는 법학박사인 아버지의 학구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그는 에르푸르트 대학과 킬 대학에서 공부한 후 1684년 라이프찌히에서 대학 교수생활을 했으며, 그리고 안톤 (Anton), 샤데 (Shade) 등과 함께 성서회를 만들어 성경연구와 기도운동을 일으켰다. 할레에서 성경을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 프랑케는 프랑케 재단을 만들고 각종 영적 사회적인 사역들을 시작하였다. 학교와 교육 시설, 고아원을 세웠고 약국, 성서 출판사, 병원 등도 설립하였다.

 

5층 건물 맨 위에는 이사야 4031절 말씀이 새겨져 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 말씀 한 구절은 프랑케 재단의 모든 정신을 말해주고 있는데, 즉 프랑케의 비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 프랑케 동상

슈패너 목사에 이어 경건주의자 프랑케 목사는 할레에서 많은 사역들을 잘 감당하였다. 프랑케 재단 뒤로 걸어가면 그의 공로를 기념하여 프랑케 동상이 세워져 있다.

 

* 할레대학

할레대학(Halle Universität)은 경건주의 개척자들인 슈페너와 프랑케 등의 인물을 중심으로 세워졌으며 유럽 최초의 근대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할레대학은 1933년 마틴 루터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여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비텐베르크의 자유로운 철학과 사상과 탐구정신 그리고 할레대학의 경건주의 학풍이 만나서 이 대학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국 브리스톨에서 고아의 아버지로서 고아들을 먹이고 평생 돌보았던 조지 뮐러와 한국과 중국에 복음을 전했던 귀츨라프 (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 선교사가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 할레대학은 반세기 동안 약 6,000명 이상의 목사를 배출하여 온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했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중국 선교사로서 1832725, 충남 고대도에 발을 들여 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이다. 그는 마을 주민들에게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의료품들을 지원했다. 또한 그는 한문 성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해서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현재 충만 보령 고대도에는 당시 귀츨라프의 복음을 듣고 세워진 교회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귀츨라프는 중국과 한국을 품은 신실한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혀 몰랐던 우리 조국에 최초의 복음의 불을 지폈던 선교사이다.

 

* 독일의 경건주의 영향력

독일의 대표적인 경건주의 목회자들은 요한 아른트 (John Arndt, 1555-1621), 필립 야콥 슈페너 (Philipp Jacob Sperner, 1635-1705),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Herman Francke, 1663-1727), 진젠돌프 (Graf von Zinzendorf, 1700-1760)이다. 무엇보다도 독일 경건주의의 중요성은 초대교회의 생동성과 사랑과 능력을 사모하면서 예배의식과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와 신학에서부터 경건에 이르기 까지 많은 변화를 주었으며, 사회적, 문화적 삶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수 많은 교파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누룩처럼 조용히 형식화되어가는 독일교회를 생명력있게 변화시켰다. 또한 그들의 가장 큰 업적은 근대 선교운동을 촉발한 사건일 것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복음 들고 바다를 건너 모라비아 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잉글랜드와 미국에 영적인 밭을 일궈 부흥의 여명을 가져오게 하였다. 경건주의자들의 특징인 생동감, 실천적인 삶, 경건, 생명 등이 오늘날 우리들안에서도 리바이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조지 뮐러의 회심 장소

조지 뮐러(George Muller)1805년 독일 북부에 있는 크로펜스타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했고, 뮐러가 14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뮐러는 술을 마시고 죄를 탐닉하면서 심각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뮐러가 열여섯 살 때, 거짓 행세와 거짓말 때문에 1년간 감옥에서 절도범, 살인범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이 그에게 임했고 할레대학에 입학했다. 하나님께서는 뮐러가 지닌 죄악된 습관과 냉랭한 마음에도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뮐러는 182511월 토요일 오후에 어느 교인 가정에서 열리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여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중에 회심을 하였습니다. 회심 후 그는 영국에 선교사로 떠나 브리스톨에서 고아원 사역을 하였다. 10